2017년 3월 1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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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도자기 역사

동서양의 도자기 역사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 목차 >>
1. 동양의 도자기 역사
<한국의 도자기 역사>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중국의 도자기 역사>
-전사-
-한~남북조 시대-
-수,당-
-송,원-
-명,청-
<일본의 도자기 역사>
<한,중,일 삼국의 무역도자>
-한국출토의 중국 도자기-
-일본출토의 한국 도자기-
-중국출토의 한국 도자기-
2. 서양의 도자기 역사
<지중해와 중동지방>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
-유럽의 자기-
-고대, 중세-
-근세-
3. 맺음말


1.동양의 도자기 역사


동양에서는 은·주 시대부터 1,200∼1,300℃의 높은 온도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때부터 더욱 발달하여 한·육조 시대에는 청자 및 천목이 제작되었다. 당·송시대에는 각지에서 동양풍의 독특한 도자기인 청자·백자·천목류의 것이 만들어져서 서양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국의 도자기 역사>

한국의 토기문화의 기원은 BC6000년경부터 시작된다.


-신석기 시대-

산직할시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원시 민무늬토기와 둥근 덧 띠무늬 토기〔原始無紋土器〕가 있으며, 뒤이어 패각으로 무늬를 그린 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났다.


-청동기 시대-

무늬 없는 토기<민무늬 토기>가 발달하였다

-철기 시대-

평양 부근에 한나라의 한사군이 설치되어, 한대의 도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회도·회유도·녹유 등이 제조되었다. 한편 경주시 조양동 고분에서는 연질 토기가 출토되었고, 김해시 회현동에 위치한 김해패총에서 출토된 김해토기는 기면에 승석문을 그려 넣어 고온에서 구워 만든 경질 토기(硬質土器)이며, 그 중에는 자연유가 입혀진 것도 있다. 이 김해토기는 삼국시대 신라 토기의 모체가 되었으며, 일본의 쓰시마 섬〔對馬島〕·이키 섬〔壹岐島〕·기타큐슈〔北九州〕의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유적에서도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일본의 경질도기인 수에기〔須惠器〕의 번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에는 북쪽에 고구려, 남쪽에 신라와 백제가 형성되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도 독자적인 도기문화를 형성하였다. 고구려의 도기는 회도인데, 중국 동북부의 도기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후에 연유도도 번조되었다. 신라·백제에서는 환원염소성에 의한 회백색·회흑색의 경도 즉 신라 토기가 주류를 이루어 발달하였다. 신라 토기는 돌이 섞이지 않은 고운 태토로 만들어 1000℃ 이상의 고열로 구운 것이며, 두드리면 금속성 소리가 날 정도의 경도를 가지고 있으나 유약을 입히지 않아 홉수성이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마 속에서 굽는 도중 재가 기표에 떨어져 자연유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항아리·병·잔·굽다리접시·그릇 등 종류는 풍부하고, 기면에 선각으로 문양을 그렸다. 신라 토기는 5세기 초 일본에 전하여져 고치〔河內〕의 스에무라〔陶邑〕에서 경질도기가 번조되었다. 신라 토기는 이러한 일상적인 기명 이외에 기마 인물형 토기·압형토기·토우, 기면에 인물이나 동물을 붙인 부장용의 명기 류 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경주 시 황남 동의 황남대총에서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신라 토기는 꾸밈새 없는 질감, 음각으로 된 파상문·삼각문·평행집선문·원권문 등의 기하학적 문양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고졸하면서도 소박한 고대인의 정감이 넘쳐흐르는 듯한 정신적 힘이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삼국시대에는 중국 화난 고월자의 청자·흑유자 등이 수입된 것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통적인 신라 토기 위에 녹채·이채·삼채 등의 연유도, 회유를 의도적으로 입힌 회유도 등이 새로 나타났다. 기면에 연속적인 인화장식을 하고 그 위에 회유·연유를 입힌 것인데 기본적으로 신라 토기의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도기이다. 또 경주의 안압지와 황룡사 등지에서는 녹유와가 대량으로 출토되며 건축 장식에 연유도가 많이 이용되었다. 통일신라 토기의 특징은 중국의 금속기의 영향으로 기형과 문양이 변화되었으며, 제기적 성격이 농후한 신라 토기에 비하여 합리성과 실용성이 강조된 점에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자기의 번조가 이루어졌다. 개성에 도읍지를 둔 고려왕조는 계속되는 중국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왔는데, 자기의 경우 웨저우요·야오저우요의 청자, 루요·딩요의 백자, 징더전요의 청백자, 허난 천목, 광둥·푸젠의 도자 등 거의 중국 전역의 도자기가 들어왔으며, 개성 부근의 고려시대 무덤에서 이러한 중국 도자기가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도자기는 청자·백자·흑유자·천목·철채수·철사유·청자진사·화금자 등의 자기가 번조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청자이다. 초기의 청자는 반자태에서 회유를 입힌 녹청자였다. 본격적으로 청자가 제조된 것은 9∼10세기 초엽이며, 이 때의 도자기는 오대, 북송 초기 웨저우요 청자의 작풍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1세기경 고려에서는 중국 청자에 비하여 뒤떨어지지 않는 독특한 세련미를 가진 <비색청자>를 만들어 냈다. 이를 본 중국의 서긍이 그의 저서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근래에 더욱 세련되고 색택이 가히 일품이다.>라고 절찬한 것은 유명하다. 비색이란, 물총새 날개의 푸르름을 비유한 미칭이지만, 확실히 고려청자의 흘륭함은 세계 그어디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유조를 띠는 것이다. 고려청자의 최성기는 인종·의종 때이며 고려 특유의 작풍을 보이는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0975807&sid=knp868group1&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13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동서양의 도자기 역사
파일이름 : 동서양의 도자기 역사.hwp
키워드 : 동서양의,도자기,역사
자료No(pk) : 1097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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